그럼에도...

 

그럼에도

 

작가에게 엄청난 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인물과 배경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살고, 죽고, 사건이 벌어지고.

첫 작품 소설 예수』(2022년 완간. 나남출판사) 7권을 쓸 때 분명 그랬을 겁니다. 문학을 공부하지 않았고, 작품 쓰는 훈련을 전혀 받지도 않은 사람이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로 독자를 인도한다는 치기어린 모험심으로 불탔겠지요. 얼마나 무모하게 신이 났겠습니까?

두번째 소설 『등대섬』(2026. 나남출판사)을 쓸 때는 저도 모르게 달라졌습니다. 마음대로 등장인물을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등대섬은 몰려나고 밀려나고 쫓긴 사람들이 마지막 모여 사는 외딴섬입니다. 거기에서 밀려나면 세상천지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육지에 나가도 다른 사람 곁에 다가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섬에서 엉겨 붙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머리 속에 떠 오른 한 장면을 끝까지 붙잡고 글을 썼습니다.

밤새 치열한 백병전 전투가 벌어진 전장(戰場). 아침이 되고 해가 뜹니다. 땅에는 연기인지 안개인지 낮게 깔렸는데 한 병사가 꿈틀꿈틀 일어납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모두 죽어 넘어진 들판을 망연히 둘러봅니다. 그때 저쪽에서 다른 병사 하나가 피를 흘리며 일어납니다. 적군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두 사람 손에 각각 총이 들려 있습니다.

작가로서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총을 쏠 것인가?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이 끌어 안고 함께 목놓아 울 것인가?  

등대섬에도 전투를 겪고 그 자리에 이른 사람들이 삽니다. 서로 묻고 따지고 밝히는 일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 굳이 입에 올려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함께 살 수 있는 사람들.   

재미 없는 소설이 될 줄 알면서도 그런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등대섬』에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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