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주인인가?
사람이 주인인가?
모든 생명에게는 합당한 몫, 그 생명에게 주어진 영역이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든, 공간이든. 이전 Blog 글 <이렇게 작고 먼 곳까지>에서 살펴 보았듯, ‘인류의 자리와 시간’을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젊었을 때는 그 말에서 ‘저항’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지금은 ‘고통’을 생각합니다. 탐욕스런 한 생명체 때문에 전체 생명체계가 고통을
받는 현실에 눈떴기 때문일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전자현미경 사진이나 그림으로 볼 때는 아름답고 귀여운 바이러스입니다. 자연의
어느 영역에 조용히 머무르다가 2019년 겨울, 바글바글 엉겨 살아가는 인간의 영역으로 슬쩍 넘어왔습니다. 아니면, 바이러스의 영역까지 인간의 활동이 확대된 결과일 수도 있겠지요. 자연이 설정해 놓은 경계선, 영역의 구분이 무너졌다는 증거였습니다.
세계는 바이러스가 인류를 공격했다고 간주하면서 개별 국가와 국제기구에게 허용된 막강한 전력을 총동원하여 반격하고
대응했습니다. 바이러스와 사람 사이에 전쟁을 선언했습니다. 침공에
대응 공격을 퍼붓는 것은 인류의 당연한 권리라고 믿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지구의 균형이 깨졌다고 걱정하면서
인류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과학자들은 경고합니다.
“이제까지 지구에 일어난 5번의 생명대멸종, 그 중 6천 6백만년
전 마지막 대멸종까지 모두 자연적 요인 때문에 발생했다. 6번째 멸종이 일어난다면, 인간의 활동이 그 핵심원인이 될 것이다.”
그 대재앙 전조가 코로나바이러스였고, 자연이 인간에게 던진 마지막
경고라는 얘기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경고를 싫어합니다. 귀를 닫습니다. 자연의 공격, 코로나바이러스의 공격(COVID-19)을 21세기의 인류는 축적된 문명과 기술로 물리쳤다고
선언했습니다. 백신을 개발해서 성공적으로 대처했다고 자랑합니다. 자기나라의
기술, 자본, 제도, 절차와
정부의 지도력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선전하기에 바빴습니다. 그 틈에 다국적 제약회사나 기술회사들은
천문학적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살려야 할 사람만 살렸다’는 사실은 파묻혔습니다. 겨우 4년 5년 지났을 뿐인데, 대책
없이 생명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은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진단 키트를 보급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 백신은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 봉쇄와 격리를 받아들이면 당장
굶어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들.
어떤 철학자가 말했듯, ‘잔혹한 생명정치(Bio-Politics)’를 경험했습니다. 아홉 사람을 죽음 저쪽에
남겨 놓고, 단 한 사람의 손만 잡아 살려낸 셈이었습니다.
“그만하기 다행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기 입에 담기에는 부끄러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두 번, 세 번, 네 번…. 같은 일이 거푸 닥칠 텐데, 정녕 대책이 없습니까?
지구의 생명체계에서 아직도 사람이 주인 노릇하면서 무한정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