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찾는 비둘기
먹이 찾는 비둘기
관목 울타리 옆에 잿빛 암비둘기 두 마리가 먹이를 찾아 종종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땅에 희끄무레한 것이면 무엇이든 쫓아가 콕콕 찍었습니다.
어릴 적 시골 살던 생각이 났습니다. 가을걷이를 하면서 아버지는 싹싹 긁어 모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감나무
높은 가지 한 두개는 으레 남겨두셨습니다. 우리 집만 그런 것 아니고,
동네 사람 거의 모두, 눈이 푹 쌓이면 마당에 곡식 한 두 주먹 뿌려 놓았습니다. 충청도 공주 시골에서는 어떤 사람에 대하여 ‘인정머리 없고 야박하다’고 말하면 ‘함께 살아가기 참 힘든 사람’이라는 평가였습니다.
2025년 11월, 세계는 더 이상 예전의 세상이 아니라는 선언을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인정머리 없는 세상, 나만 살겠다는 세상으로 들어가겠다는
공식신호로 저에게는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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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국가 안전 전략 (NSS.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이름으로 발표된 전략문서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보자면 미국이라도 살아남겠다는
다짐처럼 읽혔습니다.
2025년 12월, 성탄절을 며칠 앞둔 날, 미합중국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 루이지애나 주지사 제프 랜드리를 그린란드 특별 대사로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의지를 밝혔습니다.
“국가 방위(national protection)를 위해서 미합중국은 그린란드가 필요하며,
그래서 우리는 그린란드를 가져야 한다(we have to have it)”
‘필요하니 내가 차지해야겠다’는 19세기 식민제국주의 논리였습니다.
그가 2025년 1월, 미합중국 대통령에 다시 취임하면서부터 북쪽 국경을 맞댄 오랜
우방국 캐나다를 미국에 흡수 합병하여 51번째 주로 삼겠다고 얘기하고,
그린란드를 획득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을 때, 세계는 그저 허풍으로 웃어 넘겼습니다. 남쪽 국경을 맞댄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불법이민자를 색출한다면서
무차별적으로 이민세관단속국(ICE. United State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을 동원할 때, 세계는 당사국 문제로 치부했습니다. 2025년 9월, 미국 조지아 주에서 공장건설을 위해 미국에 파견돼 합법적으로
일하던 300여명 한국 기술진을 ICE가 구금했던 일도, 한국과 미국간의 일로 처리하고 넘어갔습니다.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도널드 트럼프는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였습니다. 100%, 200% 상식에 맞지 않는 관세폭탄에 각국 정부는 개별 국가별로, 또는 유럽연합(EU)처럼 고작 블록차원으로만 대응했을 뿐입니다. 세계가 힘을 모아 부당한 조치를 하는 미국을 주저앉힐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로 찾아와 머리 숙이는 각국 지도자들을 상대로
미국 대통령은 흥정을 벌이고 관세율을 멋대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거래의 달인’답게 각개 격파했습니다. 세계가 연합하여(united) 대항하지 못한다는 것을 미국이 확인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한국도 미국에 3,500억 불을 투자하기로 하고, 겨우 15%의 관세를 허락 받았습니다.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에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는 아무 소용없는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NSS 2025에
놀랄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기후변화, 탄소배출 Zero 운동(Net Zero)등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했고,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미국에 입국한
외국인들을 추방하고 새로운 입국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나라 숫자를 늘렸습니다. ‘대량 이민 이주의 시대는
끝났다’고도 밝혔습니다.
2017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파리기후협약을 탈퇴를 첫번째 선언했습니다. 2025년 1월, 2기
대통령 취임 첫날 그는 두 번째 탈퇴를 감행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내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는 일이 참 중요합니다.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곰곰이 생각하면 조금씩 실마리가 보이기 마련입니다.
얼마전, 한국기독교연구소와
생태문명연구소를 운영하는 김준우 박사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기후변화를 오랜 시간
추적하고 분석한 끝에 여러 권의 책을 발간해서 임박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경보를 울렸습니다. 그분의
쓸쓸한 마지막 독백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같다!”
제 생각으로는 미국도 그렇게 판단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박한 지구기후위기의
경착륙(Hard-landing)을 대비하는 미국.”
파리 기후협약을 연거푸 탈퇴하면서 겉으로는 기후변화와 위기를 부인하지만, 인류가 재앙적 결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학자와 각 기관 연구자들을 동원해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돌려 여러 결과를 도출하여 해석한 후, 가장 미국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정책을 결정합니다. 미국도, 인류가 지금 돌이켜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단계에 이미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한 것 아닌가 저는 미뤄 짐작합니다.
학자들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구
대부분 지역은 머지않은 장래에 더 이상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땅으로 바뀔 것입니다. 인류는 일찍이
경험한적 없던 자연재해를 겪으며 대량 기아, 식량폭동, 대량
인구이동을 눈으로 볼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미국은 ‘요새(Fortress) 전략’을 선택한 것 아닐까요? 미국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이주민을 모두 쫓아내고, 새로운 이민을
거부하고, 국경을 봉쇄하여 미국인만 살아남는 세상을 대비하려는 계획 아닐까요?
미국의 관점에서 상황을 본다면,
새로운 경작지와 깨끗한 물의 공급원으로 캐나다가 필요하고, 중국을 대신한 희귀광물자원 공급지로
그린란드가 필요하고, 미국 자체에서 생산하는 석유에 더하여 베네수엘라의 석유가 필요하고, 대륙국가로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파나마운하의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그린란드는
희귀광물이라는 매력적 자원 외에, 북미대륙으로 접근하려는 러시아 중국 유럽 등 세력을 거부할 수 있는
전략요충지입니다.
미국에게 중요한 공급망과 물자에 대해서는 전세계 어디에서든 안전한
접근통로를 확보하는 한편, 서반구(Western Hemisphere)
즉 북아메리카 중아메리카 남아메리카에는 역외국가의 접근을 봉쇄하겠다고 합니다. 먼로주의를
부활하여 트럼프주의(Trump Corollary)로 확장한 것입니다.
아니기를 빌지만, 징조는
농후합니다. 다만 해석의 문제로 남겨져 있을 뿐입니다. 해석에는
언제나 각자의 시각이 담기지만, 눈 앞에 드러난 증거와 징조를 외면하면 공허해지기 마련입니다. 제 눈에는 기후변화가 21세기 미국 생존전략의 배후 원인으로 보입니다.
인류문명의 마지막 단계에서 혼자 살아남겠다고 어떤 나라가 문을
걸어 잠근다면, 그들은 혼자 살 수 있을까요?
지구는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둥지입니다. 생명은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게걸스럽게 모든 자원을 쓸어간 다음 장벽을 높게 세운 나라를 생각하다
장벽 밖에서 벽을 두드리는 ‘남은 사람들’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언 땅에서 먹이를 찾아 종종거리는 비둘기를 보면서, ‘인정 없는
세상’과 생명을 낸 분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예리한 관찰입니다. 다만 기후위기가 배후 원인이라는 진단은 근거보다 단정이 앞선 느낌입니다. 미국의 관세, 이민, 그린란드 이슈는 보통 기후 하나라기보다는 대중국 경쟁, 산업 & 공급망, 국내정치 같은 여러 현실적 요인이 겹친 결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트럼프 현상은 일시적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인류생존을 위해 형성된 하나의 큰 흐름으로서 Globalization은 결국 지속될 수밖에 없을 거니까요. 미국도 그게 살 길이죠. 각자도생? 천만에요. 지구촌 세상이 되어버린 오늘의 세계, 연대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니까요. 그게 의 길이 아닌가요. 그 길을 가이드 하시는 윤작가에게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보냅니다.
답글삭제감사합니다.
답글삭제힘으로 얻는 평화라니...낯뜨거워서 어떻게 '평화'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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