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면...
돌로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면…
‘말 한 마디로
천지사방 널려 있는 돌덩이를 빵으로 바꿀 수 있으면…’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부르는 국민학교 시절, 공부하고 뛰어
놀다가 해질 무렵 학교 끝나고 집에 갈 때면, 배가 고팠습니다. 점심 도시락을 먹기는 했지만, 십 리 길 가까운 집은 까마득하니 멀게
느껴졌습니다. 빵으로 바꾸든 떡으로 만들든,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분명 저는 서슴없이 그렇게 했을 겁니다.
“사람이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으로 산다.”
기독교인의 성경에는 2000년 전 예수가 그를 꼬드기는
사탄에게 단호하게 대답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유대 광야에 나가 40일 간
금식하며 기도했으니 분명 엄청 배가 고팠을 겁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며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였기 때문에 배고픔을 참고 하느님께 의지하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는 얘기지요.
7권으로 길게 풀어 놓은 제 책 《소설 예수》, 이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었습니다. 2000년 동안 설교자 신학자들이 나서서 수 백만 번 수 천만 번 해설했을 이야기였지요. 희한하고 신통하게 해석(Re-Interpretation), 해설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재주가 저에게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삶에 맞춰서 ‘재구성(Re-Construction)’ 해보자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돌로 빵(밥)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사람이 그렇게 살면 되겠는가?’
평소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소설 속에서 차곡차곡 풀어 놓았습니다.
“빵은 생명입니다. 하루치 빵은 하루만큼의 생명입니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때맞춰
풀을 뽑고, 농부가 하루 종일 밭과 논에 엎드려 일하다가 추수 때가 되어 곡식을 거둬들이고 타작하며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곡식을 갈아 빻고 반죽 만들고 구워야 합니다.”
“뿌려진 씨가
싹을 틔우고 자라도록 신비한 힘으로 땅이 받쳐 주어야 합니다.”
“때 맞춰
비가 내리고, 햇빛이 골고루 비춰 곡식이 고루 익어야 합니다.”
“산들 바람도
불고, 낮이 되고 밤이 되고 시간이 흘러야 하고…”
“하느님이
농부와 함께, 밭에 엎드려 농사 지은 겁니다.”
그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야 빵이 됩니다. 하느님과 사람과
땅과 시간과 자연과 신비가 엉겨서 곡식이 되고 나중에 빵이 됩니다. 그래서 제 소설에는 예수가 선언하는
장면을 넣었습니다.
“할 수 있다고
빵은 그렇게 만들어 먹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한 사람이
백 사람, 천 사람 먹을 만큼 농사를 지어 먹이는 대신, 백
사람 천 사람이 골고루 자기 몫의 농사를 지어 자기 식구와 먹고 사는 세상이 올바른 세상입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근본을 뒤집어 흔든 셈이지요.
그래서, 제 소설 속의 예수는 ‘혁명가’, ‘해방자’,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구세주’ 그 어떤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분입니다.
저는 그를 이렇게 부릅니다.
“세상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사람!”
들은 듯 못 들은 듯한 신선한 해석입니다.
답글삭제하루치 빵은 하루의 생명.
밥이 하늘이듯 생명의 빵도 하늘.
분명한 건 2천 년 전 예수가 정신적, 영적인 면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체제를 뒤흔드는 혁명가였다는 것이죠. 이를 에서 실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상세하고 해박하게 썼다는 것이고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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