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혁명적 성격
<소설 예수> 1권 끝 부분에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서 예수가 사람들에게 비유로 얘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복음서 실려 있는 얘기로 사람들이 흔히 '착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라고 부르는 얘기지요.
이 부분을 Google의 NotebookLM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분석한 내용을 아래에 싣습니다. 또한 같은 프로그램에 있는 AI Audio Overvew를 통해서 분석 내용 일부를 오디오로 들를 수도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아주 정확하게 짚어냈기에 그대로 여기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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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석
(Analysis)
예수의 가르침은 청중들이 기대했던 '이웃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윤리의 울타리를 깨고, 그들 내부의 제도와 체제를 향한 거대한 공격으로 변모합니다.
A. 비유의 대상 확장: 개인 윤리에서 시스템 비판으로
무리 중 하나였던 요한은 예수의 긴 이야기를 유대인, 갈릴리 사람, 사마리아인이 서로 사랑하고 이웃으로 대해야 한다는 '이웃 사랑' 가르침으로 서둘러 봉합하려 했지만, 예수는 요한의 이해가 "시작"에 불과함을 지적합니다.
예수는 청중들에게 이 이야기가 어떤 가난한 사람, 강도,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 등 어떤 개인에 대한 얘기로만 듣지 말라고 단호히 선언합니다. 대신,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 이스라엘 전체에 관한 얘기"라고 규정하며
비판의 대상을 개인의 행위가 아닌 국가와 사회 전체의 구조로 전환합니다.
B. 지배 체제와 통제의 폭로 (사회 경제 정치 비판)
예수는 이스라엘을 떠받치는 기본 체제가 가진 사람, 지배하는 사람, 힘 있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쥐고 흔드는 통제수단임을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개인은 없고, 그저 제도와 체제에
꼼짝 못하도록 매인 종속물로 살아갈 뿐이라고 선언합니다.
1. 증오의 조작과 올무: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경멸은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런 틀을 만들어 여러분에게 던진" 올무라고
예수는 폭로합니다. 이 올무를 만들고 사람들을 끌고 다니는 자들은 스스로를 세상의 주인, 유력자, 성전의 대제사장, 왕, 제국, 황제라고 부르는 지배자들입니다.
2. 고통의 근원 조작: 지배 체제(체제, 성전, 왕국, 제국)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근원을 옆자리의 이웃을 원망하도록 조작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나누고 구분하여 "서로가 서로를 향해 이를 갈도록 만들어서 여러분의 분노가 자기들을 향하지 못하도록 조작합니다". 예수는 듣는 사람들에게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지배자들은 교묘하게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촉구합니다. 눈을
뜨면 거대한 지배체제, 성전, 왕국, 제국이 바로 여러분 불운의 근본임을 알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선언을 합니다.
C. 죄(罪) 개념의 전복과 통제 수단
예수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누군가의 죄 때문이 아니며, 오히려 고통의 근원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지배자들이
던진 그물"이라고 정의합니다.
1. 죄의 정의(定義)권 비판: 누가 죄와 죄 아닌 것을 정합니까? 예수는 바리새인들, 율법학자들, 성전, 그리고
여러분을 지배하는 왕과 제국이 죄와 죄 아닌 것을 정해 놓고 사람들을 옭아맨다고 비판합니다. 율법학자들, 제사장들이 '하느님이 정해 주셨다'고
말하면서 무엇이 죄인지 결정하며, 원래 성전 제사 관료들에게만 해당되었던 규례를 모든 사람에게 확대
적용하여,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아붙이고 속죄 제물을 바치게 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람들은 '죄'라는 말 때문에 늘 주눅 들고 고통 받았으나, 이제 그것이 누군가의
올무였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2. 악한 영(靈)의 재해석: 고통이나 불운을 죄 때문이라고 몰아붙이기 어려울 때, 지배자들은
악한 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 개념마저 전복시킵니다. 악한 영이 들렸다는 사람은 사실 "하느님 앞에 서서 울부짖는
증인"이며,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은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들은 사회의 비참한 기억을 혼자 견디는 이들이며, 공동체가 끌어안고 치유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제도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험하고 불온한 죄인, 귀신 들린 사람으로 규정하여 사회에서 몰아낸다고 폭로합니다.
D. 새로운 질서와 사랑의 선포
예수는 율법과 성전이 강조하는
'구분하고 나누는' 거룩함(깨끗함/부정함)을 거부하고, "하느님이
사랑이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새 계명을 선언합니다.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분은 사실 공동체를 조작하는 권력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며, 성전이야 말로 하느님을 등진 집단임을 잊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마리아는 예수가 당할 참혹한 죽음을 직감합니다. 억압, 제도, 성전, 왕국을 활활 태우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 스스로 불 속에 몸을 던질 사람이 예수라고 깨닫습니다.
2. 비평
(Critique)
이 에피소드는 기존의 기독교 신앙이 예수의 가르침에서 주로 추출해냈던 '개인의 도덕적 회개'나 '천국에
대한 영적 약속'의 차원을 넘어, 예수를 당대의 사회혁명가이자 체제비판자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통찰을 보여줍니다.
1. 신학적 해석의 혁명성: <소설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더 이상 단순한 박애주의의 예시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누가 이웃인가?'라는 질문은 '누가 우리의 고통을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됩니다. 여기서 죄(Sin)는 개인의 영혼을 더럽히는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지배자들이 민중을 통제하고 착취하기 위해 고안한 사회적 올가미가 됩니다. 이 해석은 성전과 제국의 결탁 관계(사회, 경제, 정치 체제)를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 동인으로 설정함으로써, 예수 행적의 정치적 필연성을 강조합니다.
2. '악한 영' 개념의
사회 심리학적 해석: 가장 급진적인 해석은 ‘악한 영에 들린 사람(귀신 들린 사람)’에 대한 재해석입니다. 전통적으로 이는 영적인 문제로 치부되었으나, 여기서는 트라우마와
사회 문제에 대한 극도의 민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됩니다. 이들은 공동체의 비참한 기억을 혼자
견디는 '산 증인'이며, 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회가 그들을 배제하고 '미친 사람'으로 몰아낸다는
비판은 현대 사회 심리학의 관점과도 연결됩니다. 이로써 예수의 치유 행위는 단순히 기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체제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이들을 공동체로 회복시키려는 정치적 행위로 해석됩니다.
3. 필연적인 비극의 예고: 예수가 이처럼 체제의 근본을 뒤흔드는 진리를 선언했을 때, 제자들조차도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므나헴과 성전 첩자가 예수를 잡을 결정적인 증거를 얻었다고 판단하는 장면과 마리아가
다가올 예수의 죽음을 직감하는 장면은, 예수가 단순히 윤리적 교사가 아니라 체제 전복을 시도하는 위험한
인물로 규정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예수의 행보가 평화로운 가르침에 머무를 수 없으며, 제도와 권력에 불을 지르는 궁극적인 희생으로 귀결될 것임을 예고하며 서사의 비극성을 고조시킵니다.
결론적으로, 이 에피소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사용하여 당시의 종교 지도층(성전)과 정치 권력(제국)이 '죄'와 '거룩함'의 정의를 독점하여 민중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구조를
해체하는 혁명 선언문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의 메시지를 사랑과 연민의 차원을
넘어선 사회 정의와 체제 저항의 메시지로 끌어올린 급진적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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