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이 성전을 허물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리라!”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너희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구나!”

 

예수가 예루살렘성전에 들어가 유월절 제물을 파는 사람들과 성전세 낼 돈을 환전하는 상인들을 쫓아내면서 했다는 말입니다.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기독교 성경의 4개 복음서들이 모두 한 가지 사건을 기록했지만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은 1년 남짓 계속된 예수의 활동 마지막 시기, 유월절 준비기간에 발생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달리 요한복음은 3년여에 걸친 예수의 공적활동 초기 사건이라고 밝힙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淨化)한 사건이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성전파괴의 예언이라고 해석합니다. 사건이 발생한 시기, 내용, 예수의 행위, 그리고 복음서 저자가 밝힌 의미가 다양합니다. 어쨌든, 복음서들은 이 일로 예수가 예루살렘성전과 정면 충돌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합니다. 

기독교의 교리 교의는 서로 다른 내용을 하나의 통일된 사건과 해석으로 제시합니다안경을 씌워주는 것과 같습니다. 한 가지 색깔로, 정해진 배율(倍率), ‘다름보다는 같음을 주목하도록 권위적 기본 틀을 정한 셈이지요.


페인팅, 예술, 건물, 사람이(가) 표시된 사진

AI 생성 콘텐츠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Giovanni Paolo Pannini, 1692-1765) 성화

성전정화(Purification of the Temple), 1724년경

 

저도 <소설 예수> 3권에서 이 사건을 다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누구라고 고백하는지, 예수 스스로 자기를 누구라 생각했는지 정체성과도 관련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왜 예수가 성전 뜰에서 사건을 일으켰는지, 사건의 영향이 어떠했는지 살펴보려는 뜻도 있었습니다.


몇 가지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첫째, 예수가 로마 총독에 의해 반도(叛徒)에 해당하는 십자가 처형을 받았는데, 어떻게 그의 제자와 추종자들이 아무일 없듯 그 이후에도 예루살렘, 그것도 날마다 성전에 들어가 처형 당한 예수의 가르침을 전했을까요?

둘째, 유대 성전 지도자들이 주장했듯 예수가 유대인의 법을 어기고 하느님에게 참람한 사람이었다면 왜 총독이 개입해서 로마법으로 처형했을까요? 유대인들은 죄인을 사형으로 처형할 권한이 없어서 총독의 힘을 빌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는 스데반 집사를 유대인들이 돌로 쳐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셋째, 요한복음의 기술대로라면, 예수가 3년 전에 성전에서 사건을 일으켰을 때 바로 처형하지 않고 왜 그가 마지막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체포하고 처형했을까요?

넷째, 성전을 정화한 것인가요? 아니면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한 것인가요? 예수가 자기 자신과 성전을 동일시해서 성전이 무너지고(처형당하고) 새로 성전을 세우고(부활하고)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종말론적 예언을 보여준 일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이 사건을 왜 그랬나?’ 스스로 묻고 해답을 찾는 일이 예수를 따르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결정한다고 믿습니다.

다섯째, 예수의 처형은 유대 특히 예루살렘에서의 행위 때문인가요, 갈릴리에서의 가르침과 행위를 포함한 일인가요? 로마 총독은 갈릴리의 행위를 처벌할 수 없고, 갈릴리 분봉왕은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가르침과 행위를 처벌할 수 없고, 성전은 로마법 저촉에 관한 일을 처벌할 수 없습니다.

여섯째, 예수 혼자 저지른 일일까요, 아니면 선생을 따라 함께 성전에 들어갔던 제자들이 모두 동조했을까요?  복음서 기록으로는 예수 혼자 저지른 일로 보입니다. 상인들은 예수 한 사람의 저지에 분개하고 반항했을까요, 순순히 수긍하고 물러났을까요? 상인들은 부자였을까요, 아니면 성전의 허가를 받고 성전 뜰에서 그런 장사라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일곱째, 이방인의 뜰 한구석에서 벌어진 잠깐의 일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었을까요? 복음서를 보면 상인들을 내쫓고 난 다음 성전 뜰에서 물건을 나르지 못하도록 예수가 막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성전이 서 있는 성전산 성전터는 관중석을 포함한 축구장 12개를 나란히 이어 놓은 크기의 면적입니다. 남북으로 길이가 1,500 미터나 됩니다. 그 넓은 면적 안에 성전 건물도 있고, 이방인의 뜰도 있고, 왕의 주랑건물, 솔로몬의 주랑건물도 있습니다. 유월절 명절 기간에 찾아오는 참배객 관광객의 숫자가 30 ~ 40만명이나 됐으니 예수가 사건을 일으킨 니산월 10일이라면 최소 약 2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성전 구역 안에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가 이 넓은 성전구역과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었을까요? 

 

이 밖에도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묻지도 말고, 서로 다른 점은 눈에 두지 말고, 오로지 가르쳐준 대로 같음만 생각하며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한다면, 별 수 없이 의문을 접고 믿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소설 예수>에서는 이 장면을 다양한 관점에서 되풀이하여 보여줍니다. 성전 측의 눈, 예수를 쓰러뜨리려고 올가미를 설치하는 사람의 눈, 주랑건물 위에 늘어선 로마 군인들의 눈, 예수의 친구 히스기야의 눈, 성전지도부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 의적단 하얀리본의 눈,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라 온 제자들의 눈, 일행을 따라 줄레줄레 성전 뜰에 들어온 예루살렘 성벽 밖 움막마을 사람들의 눈. 각자 자기들 위치에서 자기들 눈으로 보고 생각하고 해석합니다.

성전 뜰에서 벌인 이 한 가지 사건, 예수의 가르침 중 위험한 몇 가지 때문에 그가 로마 제국에 의해 처형 당한 것이 아니라고 밝힌 것이 <소설 예수>입니다. 그의 삶과 가르침이 당시 로마 제국의 폭력 통치에 마주 서는 일, 모든 경제적 수탈과 억압 앞에 몸을 일으켜 세우는 일, 비폭력 저항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다.”

성전에 모신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이 세웠다는 세상의 권위와 지배체제와 제도가 아니라, 가정을 꾸리며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얘기입니다.  

21세기 한국 땅 남해 먼 바다 외딴섬에서, 제가 새로 쓴 소설 <등대섬>에서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댓글

  1. 그 날 예수와 제자들의 존재가 성전을 압도했다. 저들의 가르침이, 병고침이, 각성이 시장의 소란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종교 장삿꾼들의 잽싼 발이 꼬이고 틀림없던 저들의 계산이 틀리고 시장의 열기는 식어 파장이 된다. 죽여라! 저놈들 때문에 우리 장사 다 망쳤다! 예수 일행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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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당시 예수의 행동은 억압받는 기층민을 위한 행동으로 현대의 아나키스트와 유사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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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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