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예수』를 다시 꺼내며
- 사람이 된 하느님, 하느님이 된 사람 -
2023년 12월 이후, 긴 침묵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다시 한 편의 이야기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소설 예수』(나남출판사, 2020~2022)를 완간한 이후에도 제 안에는 여전히 떠나지 않는 물음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물음이 저를 『등대섬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로 이끌었습니다.
“작가님은 Deist인가요?”
얼마 전 한 독자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소설 예수』에는 기적이 없고, 신은 침묵합니다.
작가님은 Deist, 이신론자(理神論者)인가요?”
놀라운 질문이었습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소설 예수』를 끝까지 정독했다는 증거였고, 그런 물음을 던지게 만든 글을 썼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Deist가 아닙니다.
기적을 지운 이유
저는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는 기록을 믿지 않습니다. 돌을 떡으로 바꾸거나, 죽은 이를 살렸다는 복음서 이야기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설 속의 예수는 기적을 구하는 대신 사람 스스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이 베푸는 기적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를 묻고 싶었습니다.
기적 없는 예수는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그가 걸은 길은 이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를 ‘징검돌 하나 놓고, 나머지는 뒤따르는 이들의 몫을 남긴 사람’으로 그렸습니다.
그가 견딘 고통은 더 이상 감탄의 대상이 아니라 공감과 책임의 자리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인간의 한계를 십자가 위까지 끌어올린 사건’이며,
그가 떠난 자리는 이제 우리의 몫이 됩니다.
예수를 따르되,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존재,
예수보다 더 넓고 깊게 살아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 예수』의 마지막 문장은
“사람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분리의 울음을 울었다”입니다.
사람의 삶은 어미의 품에서 분리되는 울음으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침묵하는 하느님
『소설 예수』의 하느님은 침묵합니다.
명령도, 응답도, 기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위임’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사람에게 넘겨주셨고, 더 이상 외부에서 개입하지 않습니다.
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 안으로 스며들었기에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Deism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학적으로는 ‘하느님의 자기 비움(Kenosis)’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사람이 하느님의 자리를 감당하게 됩니다.
『소설 예수』에서 예수는 구세주가 아닙니다.
그 자신이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하느님 나라를 이루라고 떠난 사람입니다.
“너 혼자 세상을 구원할 수 있겠느냐?”
구원은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단번의 기적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일어나는 인간의 여정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없는 유신론, 책임 있는 인간의 이야기
『소설 예수』는 Deism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신학도 아닙니다.
기적은 없지만, 책임이 있습니다.
응답은 없지만, 응답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계시되,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하느님이 되어야 합니다.
『소설 예수』는
신이 침묵한 자리에 남겨진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그 침묵을 견디며, 책임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서사.
그것이 제가 쓰고자 했던 이야기입니다.
『등대섬』으로 이어지는 길
이제 저는 그 다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등대섬』은 바다 끝 외딴 섬에서 시작됩니다.
그곳에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갑니다.
하느님은 여전히 말이 없고, 사람은 여전히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람이 사람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입니다.
신보다 더 깊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공동체.
『등대섬』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소설 예수』가 묻고 물러난 자리에서,
『등대섬』은 묻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믿음이 아니라 버팀이고,
말이 아니라 나눔이며,
끝나지 않은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마무리
앞으로 이 블로그에
『소설 예수』의 뒷이야기,
『등대섬』의 밑그림,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상에 대한
저의 사유를 차곡차곡 담아가겠습니다.
세상은 더 거칠어졌고,
인간은 더 외로워졌으며,
신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말을 시작해야 할 시간입니다.
여기서부터 다시, 함께 걸어가 주시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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