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나누는 이야기

 

역사와 나누는 이야기

1980년대 초반, 아직 팽팽하게 젊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유럽에 출장을 나갔을 때 주말에는 하루 종일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지냈습니다. 역사가 말 걸어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고, 꼼꼼히 살폈습니다. 무슨 사연을 기록했는지 도무지 짐작 할 수 없는 신비하고 이상한 형상의 옛 문자를 들여다볼 때면 먼 옛날로 걸어 들어가는 듯 느꼈습니다. 몇 가지 기호가 번갈아 나타나며 패턴을 이룬 기록을 보면서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의미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대부분 유물들이 다른 나라 먼 지방에서 출토되거나 발견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참 묘한 기분에 빠졌습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의 역사가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의 유명 박물관 전시관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물 옆에 붙여 놓은 설명을 통해 출토한 지역과 연대 그리고 어떤 일에 사용하는 물건이었는지 알 수 있었고, 그때 사람들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뿐이었습니다. 앞 뒤 역사를 뚝 잘라내고 옮겨와 세우거나 뉘어 놓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물이 가슴을 열지 않는데 어찌…”

이걸 쓰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니…”

금으로 된 유물이 발견됐다고 당시 모든 사람이 손가락에 금가락지를 끼고 살았다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기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록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에 가려 숨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화려하게 치장한 높은 수레 위에 앉아 위엄을 떨치던 왕 앞에 꿇어 엎드린 사람들, 자기 기록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들도 그때에는 땅 위에서 숨 쉬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박물관 전시실에 서 있거나 누워 있거나 파편이 되어 흩어진 조각들은 해석을 통해 그것들이 간직한 사연의 일부를 슬쩍 드러냈습니다. 문제는 해석한 사람이나 관람하는 사람이나 유물이 사용되거나 살아 있거나 서 있을 때의 상황과 다른 상황에서 각자의 시각으로 남아 있는 부분만 본다는 점이었습니다. 생략된 부분은 어둠 속에 조용히 숨어 있고.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블박물관 유리관 속에 보관된 유물을 통해 출토된 지역에 살았던 옛사람들을 만나겠다는 기대를 접었습니다. 특히 기록이 문제였습니다. 그저 몇 사람만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시대가 있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1% 2%로 조금씩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2000년 전 지중해 연안에서도 좀 발달한 지역이래야 겨우 5%에 못 미치는 사람들이 글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1920년대 조사 내용을 보면 겨우 30% 조금 넘는 사람이 한글이나 한자를 읽고 썼습니다. 그러니, 3국 시대가 열릴 무렵이던 2000년 전에는 과연 몇 사람이나 글을 읽고 썼겠습니까?

일반인은 글을 읽을 수 없었으니 독자는 언제나 특별히 정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반인은 기록을 볼 기회도 없었고 설사 보았더라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기록하는 일, 기록을 읽는 일, 보관하는 일도 특별했고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한 목적에 따라 기록에 관련된 일을 독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1세기 대량출판 활자문화에 익숙한 우리의 관점에서 옛 기록물에 접근할 때 생각치도 못했던 실수를 할 때가 많습니다. 기록물을 제작하는 과정과 누구를 위해 기록했는지 기록자와 당시 독자의 입장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Ancient Egyptian art . 
   출처 
    https://artincontext.org/egyptian-art/


역사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작업이 아닙니다. 역사가 현실의 삶에 깊이 연관되어 있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어림잡아 우리나라 국민 1/4-1/5이 스스로 교인이라고 밝힌 기독교, 제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입니다.   

숫자는 스스로 말을 하지 안습니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그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에 따라 의미가 다릅니다. 역사적 배경과 필요성은 알지만 종교가 정치와 분리되었다는 말을 저는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국어 산수 영어 미술 음악 체육이 교육이라는 큰 틀 안에서 작용하듯 종교 정치 사회 경제 문화도 사람의 삶에서 하나로 꿈틀거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양한 신앙적 신학적 진술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사도신경>이라고 부르며 공동으로 고백하는 기도의 전반부는 아래처럼 쉽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신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내려왔다가(성육신: Incarnation) 맡은 일을 마치고 신의 나라에 돌아갔는 데 때가 되면 다시 온다

이 진술에서 주어(主語)는 예수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공동고백기도의 주어는 기도를 드리는 나입니다. 하여튼 주어에 동사 목적어 형용사 부사 접속사를 다양하게 조합하면서 확장하고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면 무한정 뻗어 나갈 수 있는 내용입니다.

놀랍게도 이 고백기도 후반부에는 제한 조건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축복은 전반부 진술을 자기 고백으로 삼는 사람에게만 허락된다는 제한입니다. 그 제한이야 말로 기독교가 ‘믿는 사람들만 위한 종교였다’ 비난을 받게 된 시초였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 기도에는 보호와 돌봄을 받아야 할 일반 사람들이 빠졌습니다. 씨 뿌리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비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고달픈 삶도 빠졌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가르침도 빠졌고, 가난한 사람이 복을 받는 축복도 빠졌습니다. 과부는 보호해줄 남편이 없고, 고아는 보호해줄 부모가 없고, 가난한 사람은 그들이 누리고 살아야 할 몫을 빼앗긴 사람이었다는 상황을 이해해야 예수의 가르침이 작동합니다.

예수는 보호와 돌봄이 모든 사람의 의무이고 동시에 권리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느님이나 왕이나 지배자들에게 미룰 일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 세상을 그는 하느님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적절한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일은 예수 이후 2000년 동안 깊이 가라 앉아 있다가 20세기, 21세기에 물 위로 떠 올랐습니다. 정치학에서는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야 말로 예수가 선언한 하느님 나라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하느님 한 분의 세상이었다가 지배자 몇 사람의 세상이 되었고, 그리고 결국 모든 사람이 골고루 책임지고 누리는 세상으로 바뀐다.”

, , 우리의 관계를 재 발견한 세상, 바로 하느님이 인간에게 맡긴 세상

     런던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미라.


예수의 가르침은 유리관 속에 고이 모신 귀중한 가르침이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접 그를 만나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존재를 확인하고 그의 삶과 가르침을 믿으면 결국 따름의 길에 나서지 않겠습니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예수를 만난다는 말은 그의 마음에 내 마음을 잇댄다는 말일 것입니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에 같이 살았던 사람들, 눈물 흘리며 가슴을 치다가 아름다운 석양을 보면서 내일의 희망을 품고 잠자리에 들었던 사람들, 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예수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예수는 그들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난 예수를 이 시대 사람의 삶으로 풀어내면 그가 꿈꾸었던 인류의 희망을 우리가 이뤄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유물을 그 당시의 삶으로 바꿔 읽고,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다시 해석하는 일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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