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직접 만나다.
예수를 직접 만나다.
“바울로부터 시작하면 예수를 부정확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고, 예수에게서 시작하면 바울을 달리 해석해야 한다.” (‘기독교의 탄생’. 존 도미니크 크로산)
기독교 경전 ‘신약성서(New
Testament)’ 27개의 문서 중에서 13 문서가 바울의 이름으로 작성된 서신(Letter)입니다. 학자들은 그중에서 7개 서신을 바울이 직접 썼거나 구술한 문서로 보는데 신약성서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보다 25~30여 년 전에 쓴 서신(‘데살로니가
전서’)도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하느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계획을 실현한 분”
헬레니즘 문화 속에 살았던 바울은 바리새파 유대인의 오랜 바램을 엮어 예수에 대한 믿음(Faith)을 처음으로 체계화했습니다. ’예수가 가르친 내용(Teaching of Jesus)’이 아니라 ‘예수에 관한 가르침(Teaching about Jesus)’을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특별한 존재(Being)인 예수’의 의미를 밝힌 바울로부터 기독교라는 종교가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크로산의 언급이 정말 중요한 이유입니다.
예수가 샘이라면 그 샘에서 흘러나온 물이 아래로 아래로 흐르다가 어느 곳에 이르러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질 것이고, 다른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온 물과 합쳐져 각각 여러 개의 큰 냇물이 되고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틀을 잡은 기독교의
믿음대로 본다면 예수에게서 강이 시작되고 예수라는 바다에 이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가 시작이고
끝’이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소설
예수>는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고백되기 이전의 예수, 갈릴리의 가난한 목수 석수 집안에서 태어난
한 사람의 삶과 가르침과 죽음에 관한 얘기입니다. 사람들이 ‘부활이라는
볼록렌즈 안경’을 쓰고 바라보기 이전의 예수를 그렸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주인답게 세상을 사십시오. 하느님의 형상을 품은
사람, 가슴에 스며든 하느님의 인도에 따라 사람을 사랑하며 사십시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람을 사랑한단 말입니까?”
“사람이 자기
두발로 서서 스스로 걷지 않고 언제까지 하느님의 품 안에 안겨 세상을 살 수 있겠습니까?”
<소설
예수>에서 예수는 사람을 하느님에게 이끌지 않고, 하느님이
사람 속에 스며들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었습니다. 세상 구원을 위한
희생제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치열하게 살았던 그의 삶과 가르침의 결과였습니다. 가장 치욕스럽게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면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전합니다.
“십자가 아래
모여들지 말고, 각자 세상 속으로 흩어져 자기의 삶을 사시오!”
예수는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흩는 사람이었습니다. 흩으려면
단단하게 굳어진 것을 부숴야 합니다. 부드러워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뭉쳐서 차돌처럼 단단하지 말라고, 생명을 품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따뜻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소설
예수>는 기독교에서 고백한 예수가 아니라, <사람
예수> 얘기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가 독점한 예수를 모든 사람의 예수로 돌려 드리기 위해 이 소설을 썼습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얼굴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그의 따뜻한 음성을
직접 듣고, 아직 희망을 품고 21세기를 살아가도록 소개했습니다.
“심판 받아
멸망할 세상이 아니라, 아직 희망이 있는 세상을 살아 가십시오!”
<끝>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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