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쓸 사람 - 나와 우리 1

 

몹쓸 사람

그 사람 몹쓸 사람이야

제가 나고 자란 충청도 시골 마을,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 자주 나왔던 말이었습니다.

어른 앞에서 안경을 벗지 않는 사람, 논에 엎드려 일하는 어른을 모른 체 인사도 안하고 걸어가는 사람, 길에서 만난 어른에게 꾸뻑 인사하며 그대로 자전거를 타고 간 사람. 그런 사람이 몹쓸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뒤 늦게 사죄하면 노여움을 풀었지만 몹쓸 사람이었던 사람으로 오래오래 어른들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어떤 어른에게 잘못한 일이었지만, 마을이 지키는 가치를 어긴 사람으로 간주됐습니다.

마을 공동 우물을 청소하고, 두레가 났을 때 참여하고, 마을에 부과되는 공역에 꼬박꼬박 참가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몹쓸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행사나 활동에 개인사정이 어떠하든 의무적으로 꼭 참가해야 했습니다. 공동체 행사는 그뿐만 아닙니다. 이런저런 마을 잔치, 장례식에도 빠지면 안됐습니다. 공동체 참여의 의무를 어긴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이 명확하게 구분돼 있어서 그 선을 넘으면 안됐습니다. 아들은 언제나 딸보다, 남자 어른들은 언제나 여자 어른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어떤 집 아들이 마을 행사 때 힘든 일에 앞장서면 그는 곧 모든 어른들의 아들이 되었고, 앞으로 마을을 이끌고 갈 기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도시로 공부하러 나갔던 젊은이들은 명절때마다 꼭 마을 어른들을 일일이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세상 살아가는 일에 대한 당부와 가르침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했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공동체가 지키고 살았던 명예, 체면이었습니다.

네가 어디 가서 허투루 행동하면 이 마을 이름에 먹칠을 하는 거여! 아무개 아무개 이름만 대면 아는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이 마을과 옆 마을 출신이여.”

 


2000년 전, 예수가 살던 갈릴리 지방 나사렛 마을. 그때 그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몇 가지 기본 의식이 20세기 중반의 한국, 그중에서도 제가 자란 시골과 너무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그 몇가지 중에서도 우선 한가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의 관계입니다. 나는 아무개가 아니고 어느 마을 누구네 몇 째 아들, 몇 째 딸로 불렸습니다. 그러니 나를 포함한 우리’, ‘집단의 한 사람인 나였습니다. 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입니다. 그런데,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만 나를 파악한다면 내가 바라보는 세상, 내가 믿고 추구해야 할 인생의 가치는 사라집니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를 내 가치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나는 그 기대를 어떻게 충족해야 하는가?”  

바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의 눈이 바로 나의 정체성을 결정짓습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의 행동을 심리적 개인적 그리고 그만의 독특한 환경 속에서 파악하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언제나 공동체의 문화를 통해 이해합니다.  

사람은 지방 성별 직업 출신가문 민족 인종 등등 개인이 책임질 수 없는 수많은 공동체 틀에 속해 살았습니다. 각 틀에는 어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과 허용된 일이 명확하게 규정지어져 있습니다. 예수도 그런 틀 속에서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갈릴리 지방 나사렛 출신, 목수 석수의 아들 예수

<소설 예수>는 공동체 속에 함몰된 삶에서 걸어 나와 의 길을 걸은 사람 예수 얘기입니다. 2000년 전에 살았지만, 그가 눈 뜬 21세기적 였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에서 의 가치로 삶이 옮겨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사렛 마을을 떠나고,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목수 석수라는 직업 대신 떠돌이 선생과 치유자 노릇을 하며 갈릴리를 떠돌던 사람, 7남매 장남의 의무를 팽개치고 엉뚱하게 하느님 나라를 찾아 헤맨 예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용납할 수 없는 몹쓸 사람으로 불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가 안식일 아침 마을 회당 모임에서 나사렛 사람들에게 축출되는 장면이 <소설 예수>에 나옵니다. 복음서는 이 사건을 이사야가 예언했던 사람, 해방을 선언하는 예수라는 신학적 관점에서만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공동체의 안정을 깨뜨리는 위험한 일탈자, ‘몹쓸 사람예수를 마을 사람들이 배척한 것으로 그렸습니다.

예수의 자기 인식이 어떻게 그의 삶을 이끌었는지 <소설 예수> 속에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블로그에서 몇 번에 걸쳐 이야기의 배경을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계속)       

  

댓글

  1. 尹작가님.
    잘 읽었습니다.^^
    소설 예수 읽기를
    게으르게 하고 있습니다.
    송구합니다.♡

    답글삭제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