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예수> 7권 원고를 넘기고.

 

<소설 예수> 7권 원고를 넘기고.

 

지난 112, 드디어 <소설 예수> 마지막 7권 원고를 출판사 ㈜ 나남에 넘겼습니다.

원고를 넘긴 후, 조상호 회장님과 방순영 이사님, 신윤섭 이사님를 비롯한 편집진, 그리고 이필숙 디자인 실장님과 직원 등 여럿이 느긋한 마음으로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1<운명의 고리>, 2<세상의 배꼽>을 재판 인쇄하여 <소설 예수> 7권을 내년 1월 말에 완간하기로 정했습니다. 첫 소설을 이처럼 훌륭하게 끝맺을 수 있었던 것은 출판계에 단단히 뿌리내린 <나남>의 저력, 그리고 언론 의병장조회장님과 편집진의 배려와 지도 덕분입니다.

<소설 예수>는 기독교의 근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입니다. 당연히 기독교인에게는 불편한 얘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몇 분의 목사님과 신학자들은 열린 마음으로 저의 얘기를 들어 주셨고 꾸준한 교신을 통하여 힘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영국의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Don Cupitt을 소개하면서 소설의 큰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신 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예수>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처음 마음 먹은 2005년부터 따지고 보면 벌써 16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자료를 모으고, 책을 읽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Google Earth로 지형을 살피고, 등고선이 표시된 지도책을 들여다보며 많은 날들을 보냈습니다.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 때 그 사람들의 마음을 더듬었습니다.  출장 비행기 속에서, 호텔에서, 카페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놓고 글을 썼고, 밤 늦게 창밖을 내다보며 2000년 전 그때의 캄캄한 밤을 생각했습니다.



<소설 예수> 7권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에게 묻습니다.

왜 선생님은 이 험한 길을 걸으셨습니까?”

예수가 대답합니다.

나에게는 다른 길이 없었오!”

다른 길이 없었다는 절박한 마음, 풍요롭다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금방 그 마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정의는 빵 접시다 

빵이 아니라 빵 접시라고 예수는 말합니다.

체포되어 예루살렘성전의 대산헤드린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에서는 당시 지배자들이 내세우는 법과 정의 앞에 홀로 선 예수를 그렸습니다. 법을 지키자는 사람들, 정의가 사회의 궁극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놓쳤는지 예수가 짚어 냅니다.

정의와 법이 폭력일 수밖에 없는 당시의 현실을 얘기하면서 예수는 저항하라고 말합니다. 그 저항은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라는 얘기입니다. 뺨을 때리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른 쪽 뺨을 돌려 대라고 말합니다. 죽음을 각오해야 비폭력 저항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나도 사람입니다. 당신이 이처럼 폭력으로 나를 대하지만,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입니다.”

사람이라는 깨달음, 사람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은 당시 유대가 지키려던 가장 중요한 율법과 부딪칩니다. 예수는 재판정에서 다시 한번 선언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예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의 뿌리를 봅니다.

가부장 아버지 섬김이 지배자 섬김으로 확장되고 궁극적으로 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충성으로 발전했음을 예수는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하느님 이해가 당시의 전통적 하느님 이해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요셉에게서 받은 사랑을 통해 그는 남다른 하느님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아빠 아버지시다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하느님을 아버지, 게다가 아빠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예수가 이루려는 하느님 나라는 법과 정의를 내세운 하느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가장 어린 사람, 아픈 사람, 약한 사람, 늙은 사람부터 돌보는 가정을 이루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어느 때가 좋았으니 그때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사람끼리 좋은 세상을 이루고 살아야 할지 교훈을 얻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소설 예수>에서는 첫 사람 아담과 하와 부부가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났다고 해석하는 기존 종교의 틀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의 축복아래 하느님이 지으신 세상으로 걸어 나갔다고 해석했습니다.

처음으로,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서 지금 이루어야 한다

<소설 예수>에 나오는 예수는 기독교에서 믿는 예수와 전혀 다릅니다. 그에 대한 첫 고백이 기록되기 이전의 예수를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2000년 전 그때의 갈릴리와 유대로 돌아간다면 우리 자신이 바로 예수가 되어 그가 걸었던 길을 우리도 걸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소설을 통하여 우리와 21세기에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예수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에게 세상을 맡겨 놓고 사라진 하느님이 사람 속에 스며들어 사람이 되었듯, 돌로 된 심장(마음)이 살로 된 심장(마음)으로 바뀌면 십자가에 못박혀 뼈 한 조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예수도 우리 속에서 우리가 된다.”

구상하기 시작한지 11년이 지난 20165월부터 <소설 예수>를 쓰기 시작했고 5년 반 만에 마지막 장까지 썼습니다.

<소설 예수>는 이제 저에게서 떠난 책이 됐습니다. 예수가 21세기 세상을 어떻게 걸어갈지 지켜볼 뿐입니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