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크리켓

 

야구와 크리켓

20세기와 21세기 지난 100여년 동안 인류가 겪은 변화는 지구상에 처음 두 발로 서서 걷기 시작한 이후 아마도 가장 큰 변화일 것입니다.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어났고, 식량 생산도 그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인구 또한 근 4배는 늘어난 것 같습니다.

1950년대에는 전세계 인구가 20억명 조금 넘었습니다.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제가 본 기록에 따르면 예수시절 세계인구는 중국 인구까지 포함해서 약 2억명, 그리고 4억명으로 늘어나는 데 약 1800년이 걸렸고, 산업혁명 이후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한 인구가 지금은 78억명을 넘어 곧 80억명에 이릅니다.

기원전 57, 지금으로부터 2078년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신라가 세워졌고 그 20년 후 기원전 37년에 고구려, 그리고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는 기원전 4~5년 겨울에 지중해 동쪽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말이 낳은 알에서 사람이 태어났다고 믿던 시절에 예수도 태어났습니다.  

<소설 예수>2000년 전, 로마가 세상을 지배할 때 태어나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의 얘기입니다. 시간으로나 공간으로나 까마득한 먼 옛날, 아득히 먼 나라의 일이었습니다. 예수에 대한  당시의 기록을 지금 21세기의 사전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언어는 당시 사람들이 살던 세계관과 삶을 표현하는 수단이었고, 따라서 형편에 따라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기록된 언어의 의미가 지난 2000년 동안에 달라졌을 수도 있고, 2000년 전의 세계와 자연지식의 한계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감靈感에 의해 기록된 성경은 11획도 틀림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기 보다 믿음을 그렇게 고백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성경도 사람들의 절절한 신앙고백의 기록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고백이 진리의 고백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Truth)가 사실(Fact)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서양에서 계몽주의 이후의 사상이었으니까요. 사실이냐 아니냐가 진리를 고백하는 일과 상관 없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영원한 사랑!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그대는 내 사랑이었고,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었다오.

아니, 늘 철석이며 내게 다가오는 파도였오.”

영원이 무엇이냐, 언제부터 언제까지냐,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어찌 그대의 사랑이 선재先在할 수 있는냐, 어찌 사람이 별이냐, 파도냐그렇게 따진다면 영원히 변치 않을 뜨거운 사랑을 고백한 아름다운 시는 non-sense한 단어의 나열이라고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소설 예수>non-sense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이 왜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지 말하는 작업입니다. 또한 11획도 틀림없다고 문자에 매달린 분들에게는 21세기의 개념과 사상으로 예수를 만나지 말고, 그가 붙잡고 고민하고 죽어갔던 내용을 그 당시의 개념과 언어로 이해하고, 오늘에 비추어보자고 말하는 작업입니다.

<소설예수>2000년전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세상의 정치와 사람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나와 우리와 다른 사람(이웃)의 구분을 이해하고, 당시의 세계관과 자연에 대한 이해를 다룹니다

당시 사회는 오로지 정치와 친족(혈족)이라는 두 가지 기둥만 기능하는 사회였습니다. 마치 크리켓 경기 같습니다. 야구는 홈이 있고 1, 2, 3루를 돌아 홈에 들어오는 경기라면 크리켓은 두개의 위켓 사이를 왕복합니다. 현대사회를 야구에 비유하여 정치() 경제(1) 사회(2) 종교(3)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2000년전 사회와 비슷한 크리켓 경기에서는 정치와 친족(혈족)이라는 2 위켓 사이를 공을 치고 달리는 셈입니다. 종교가 정치에 속하면 국가나 황제나 욍의 종교가 되고, 친족 혈족에 속하게 되면 족장이나 가장이 제사장 역할도 겸하는 혈족의 종교가 됩니다. 마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하느님 섬김이 이뤄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너희 조상 야곱의 하느님이다

호렙산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해준 말씀이라고 <이집트 탈출기 (출애굽기)>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 부분을 기독교인들은 하느님과 아브라함 자손들과의 대대로 이어온 관계로 이해합니다. 즉 조상의 하느님이 그 자손들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주고 조상에게 약속한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모세를 통해 그분의 계획을 밝힌 내용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혈족, 친족 가족과 함께하는 하느님 즉 친족의 한 존재로서의 하느님이지, 정치 즉 황제나 왕이나 지배자들의 권력과 함께하는 하느님이 아니라는 얘기로 해석하면 어떨까요?  

<소설 예수>는 예수 시대의 사회상을 깊게 연구한 학자들의 저술과 강연, 고고학적 발견들을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앞으로 이 블로그를 통해 예수가 살았던 1세기가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와 무엇이 어찌 다른지 나눠서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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