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만남
“참 마음이 안 좋아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방금
배달 온 책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이 책이 아무개
교수가 저자 서명까지 해서 어떤 분에게 증정한 책인데 이렇게 중고서적으로 거래가 되네요, 참…”
제가 <소설
예수>를 책으로 발행했기 때문에 아내는 더 민감한 모양입니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을 하다가 얘기를 하나 들려줬습니다.
“어디에서 읽었는데요. 어떤 사람이 책을 냈고 그중 몇 권을 평소부터 잘 알고 존경하는 분들에게 증정했대요. 그런데,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자기가 낸 책이 서가에 꽂혀 있어서
뽑아봤다지요? 그런데, 어마나… 아주 가까운 분에게 증정한 책이 거기 꽂혀 있더래요. 아주 새책처럼, 전혀 읽은 표시가 하나도 안 나고, 보낸 그대로…”
그러더니 무언가 미안한 듯 머뭇머뭇 했습니다. 저와 제가 쓴 책도 혹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겠지요. 그러더니, 한참 만에 말을 이었습니다.
“이 책을 보니 참
마음이 안 좋네요! 보세요!”
책을 받아 표지를 넘기니, 정성스럽게
쓴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 선생님께’
전문 철학서적이니 아무에게나 증정했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내의 손에까지 들어올 동안 몇 사람의 손을 거쳤는지 알 수는 없지만,
2014년도에 발행된 책이었지만 흠집 하나 밑줄 하나도 없는 아주 새 책이었습니다.
“그냥 내버리는 것보다는
이렇게 내 놓으면 누구라도 읽으니 좋지 뭘…”
“그럴까요?”
대화는 그걸로 끝이 났습니다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방에 돌아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자꾸 그 일이 마음에 걸립니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도 2000년전 예수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것, 누가 읽을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2005년부터 10여년 넘게 국내에 번역된 책 50여권, E-Book과 인쇄된 원서 200여권을 읽고 공부하고, 고민하며 내용을 구상했습니다.그리고 2016년부터 4년 넘게 써서 2000년에 1권부터 4권까지 출간했고, 지난해부터 이제 남은 5권, 6권 7권을 쓰고 다듬고 있습니다.
나이 70이 넘어
‘대하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큰 용기를 내야하는 일이었습니다.
“소설이라니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비틀어 흥미 위주의 이야기로 만들었겠구나?”
그렇게 지레 짐작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성경에 복음서가
4개나 있고, 외경에도 여러 복음서가 있는데, 무슨 소설로 쓸 얘기가 더 있겠어?”
눈 쌀을 찌푸리는 분도 계시겠지요.
“지금 이때에 예수
얘기,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어? 헛 짓이지…”
예수는 이제까지 사람들이 믿고 생각하던 그런 분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어서 썼습니다. 기독교라고 불리는 종교가 어느 부분에서 예수로부터 멀어졌고 왜곡하기 시작했는지, 그의 삶과 가르침이 21세기 한국에서 왜 아직 의미가 있는지 얘기로
풀어 놓고 싶어서 씁니다.
저자는 책을 쓰고, 출판사는 편집하고 인쇄해서 널리 알리고, 독자는 읽으면서 안 가본 길을 더듬는 작업이 문학이지요. 예술에서 처음 제시한 사람들과 최종적으로 감상하는 사람이 함께 참여해야 작품으로 완성이 되듯, 소설은 독자가 이야기를 따라 걸으면서 저자가 보여준 산과 강과 하늘과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내가 살아온
삶도 함께 돌아보는 여정이겠지요. 안 가본 길이니 더욱 흥미 있는 길일 수도 있고, 아예 관심 없는 일일 수도 있고. 그런데 소설은 눈으로 읽어야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 글이 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록 중고서적으로 팔리더라도 언젠가 누구 손에 들어가 살아 있는
애기가 되는 날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씁니다.
바라기는 처음 책을 받아 든 그 순간 책장을 넘기면서, 2000년 전에 출발해서 지금 여기에 이르렀고 앞으로도 걸어갈 사람,
<소설 예수>를 통해 그 ‘사람’을 독자들이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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