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예수>, 전통을 뒤엎는 일

<소설 예수>, 전통을 뒤엎는 일

 

<소설 예수>를 쓰겠다고 얘기를 꺼냈을 때 그동안 알고 지내던 많은 분들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참 안됐다는 표정으로, 어떤 사람은 주제에 무슨?’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앉아서 차분히 제 생각을 조금씩 풀어 놓자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 중요한 애기네요! 당장 쓰기 시작하세요. 그만하면 준비도 충분히 한 것 같네요.”

그러나 저는 공부가 소설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봐요! 글 쓴다는 사람들 중에 내가 요즘 대작을 하나 구상하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작품으로 세상에 내놓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생각했으면 쓰기 시작해야 돼요!”

어느 날, 제가 존경하면서도 흉금을 터 놓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분에게 얘기했습니다.

예수님이 제 속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답답하오! 나를 좀 꺼내 주오! 이것은 내가 생각했던 일이 아니오!’ 그럽니다.”

그랬더니 그분도 글쓰기를 시작하라고 권했습니다.

아직 아닙니다. Noch Nicht입니다.”

비록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2016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만 그때 제가 입에 올렸던 말, ‘아직 아니다. Noch Nicht!’라는 독일어 단어를 생각하면 무척 두려워집니다. 익지 않은 생경한 날 것이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를 가능한 늦춘 것은 제 머리 속에서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학자의 어떤 책에 나온 무슨 이론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공부로는 예수의 마음에 닿을 수 없었습니다. 신학자들, 역사학자들, 인문학자들, 사회학자들, 종교학자들, 고고학자들의 그 숱한 연구 결과에는 언제나 학문적이고 정당한 이론異論과 반론이 제기될 수 있었습니다. 저까지 나서서 이론의 바다로 독자들을 끌고 나가 길을 잃도록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2000년전의 그때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을 누가 100% 자신 있게 그때는 이랬다!’하고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런 고민 속에 빠져 있을 때,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은근히 조바심이 일어나기 시작할 무렵, 마음 속에 떠 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전통을 뒤엎는 사람 예수!”

예수는 그가 살았던 시대를 억누르고 있던 전통을 뒤집고 새로운 길을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2000년전, 지중해 동쪽 조그만 나라, 로마제국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겪으면서, 오직 한가지 토라(Torah)의 가르침에만 따라야 하고,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경제적 가치의 지배아래 살았던 사람 예수의 답답함에 제 마음이 닿았습니다. 지난 2000년 전통에 눌린 오늘의 답답함도 느껴졌습니다.

지난 2000년 동안 억눌려 살았던 질곡에서 사람들을 겨우 풀어 놓았더니, 내 십자가를 내세워 다시 2000년 동안이나 나를 믿는 교리와 제도가 세상을 얽어 매 놓았군요. 나는 전통을 뒤집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전통이 되었군요!”

그때 예수에게는 종교도 전통도 성전의 기능과 의식도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신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만 눈에 보였습니다. 예수의 가르침 중에 이스라엘에서 전통중의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안식일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이든 거부하는 사람이든 예수는 가리지 않고 손을 내밉니다.

! 나와 함께 전통의 문을 열고 나갑시다. 신나게 박차고 나갑시다. 다시는 굴레를 쓰지 맙시다. 여기가 새 하늘이고, 새 땅이고, 새 예루살렘입니다. 모든 사람이 손잡고 살아가는 우리의 세상입니다!”  

독일의 어느 성당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예수는 금칠로 번쩍이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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