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 기독교인
처음이자 마지막 기독교인
“2000여년전,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의 반대편, ‘저쪽’에 살았다가 죽었던 예수’ 그 사람을 왜 지금처럼 엄중한 COVID-19의 시기에 다시 되돌아보는가?”
“기독교에서 섬기고, 매 일요일마다 교회에 모여 기독교인들이 섬기고 찬송하는 그리스도면 족하지, 왜 다시 예수인가?”
“성경에도 기록되지 않은 엉뚱한 얘기를 늘어 놓으면서 기독교를 모욕하려는 뜻인가?”
“예수를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와 함께 인류의 4대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면 됐지, 그의 삶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남긴 가르침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인가?”
“소설가가 소설을 재미있게 쓰면 됐지, 작품으로 말하면 됐지, 별도로 할 말이 왜 그리 많으냐?”
<소설 예수> 책을 출간하면서 종종 듣는 얘기입니다.
저는 2000년 전의 유대땅, 지금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그 땅에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이 땅에 나타나 (기독교인들은 재림再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겪는 이 숱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이 고백하듯,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이 세상이 종국적으로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그분 뜻을 따라 잘 살아온 사람들은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때가 온다고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義롭다 여김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단순화해서 말하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라 고백하지 않으니까요.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글을 쓰는 것은 주제 넘은 일이 아닌가?”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예수의 신격神格은 제 관심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세상 구원 계획도 저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 몫이 아닙니다.
다만, 기독교라는 종교의 안경을 벗고, 땅 위에 살았던 예수, 그의 삶과 고뇌와 고통과 죽음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가르침을 몸으로 살아낸 사람, 새로운 세상(그는 당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느님 나라’라 불렀지요.)을 이 땅위에서 이루려고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라고 불리기 이전의 ‘사람 예수’, ‘하늘에 올라 하느님 우편에 앉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유대땅 예루살렘 성문 밖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숨을 거둔 예수’를 독자들이 만나도록 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 ‘사람’ 앞에 무릎 꿇고 제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가 걸었던 길에 흔쾌히 동의할 수 없는 사람은 그저 등 돌리고 돌아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때의 사람들, 그를 따른다던 제자들도 그러했으니까요.
왜 예수를 이 시대에 얘기하는가?
그는 위를 보고 살지 말고, 내 옆을 보고 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게 매달리지 말고, 사람이 서로 손잡고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이끌었습니다. 초대받은 사람만 들어가는 ‘죽음 이후의 세상(천국)’을 보지 말고, 지금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사람에게 마지막 세상이고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고, 그래서 빛나는 생명으로 이 세상을 살라고 그는 가르쳤습니다.
“다른 세상은 없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지금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어서 살자!”
그의 가르침과 삶을 <소설 예수> 속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화려한 옷을 입고 왕관을 쓴 ‘그리스도’가 됨으로, 예수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높임 받기 이전의 예수는 21세기 이 땅에서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얘기합니다.
“서로 손을 내밀고 주먹을 펴시오.”
“가르침을 돌에 새기지 말고 살로 된 가슴에 새기고 사시오.”
“하느님을 찾아다니지 말고, 하느님이 되어 사시오.”
그리고 이어 말합니다.
“’나’가 아니라 ‘우리’로 살아가시오. ‘나’는 바로 ‘우리’요. 기억하십시오!”
예수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창시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철학자 니체는 말했습니다.
“기독교인이 있었다면 오직 그 한 사람 뿐. 그러나 그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299279
운보 김기창 - 병자를 고치다 ⓒ서울미술관
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141297
운보 김기창
http://www.wischik.com/irene/cross/12-jesus-dies-on-the-cross.jpg
Stations of the Cross in Lodwar Cathederal, Ke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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