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아들? 첫 사람!

책 출판을 위해 <나남 출판사>를 찾았을 때입니다. 
조상호 회장은 소설의 형태를 갖추지도 못한 원고를 보고서도 출간하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방ㅇㅇ 편집장은 젊은 이ㅇㅇ 편집자를 전담으로 지정해 주었습니다. 편집자가 주저하듯 말을 꺼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소설에 작가가 짜 넣은 허구가 구분이 가지 않도록 섞여 있어서 독자들, 특히 기독교 독자들이 무척 혼란스럽겠습니다.” 
“그럼 소설 잘 쓴 것 아닌가요?” 
웃으면서 그 얘기를 받아 넘겼지만 이ㅇㅇ 편집자는 편집장 편집부장 등 다른 사람과 달리 기독교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설 내용과 성경 기록의 관계에 남달리 더 눈이 갔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독교인 대부분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성경 ‘기록의 일점일획一點一劃도 틀림이 없다’고 믿으니 기록과 다른 얘기라면 거부감부터 들 것이 분명합니다. 
1권 2권이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여러 번 많은 분에게서 비슷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독교계에서도 어떤 분은 칭찬으로, 어떤 분은 걱정하는 뜻에서 그 문제를 조심스럽게 입에 올렸습니다. 성경(특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약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얘기, 기독교의 전통적 성서해석을 뒤집는 애기가 많았기 때문이겠지요. 예수의 선언이 1권 뒷 표지에 큼지막하게 인쇄돼 있습니다. “나는 메시아(그리스도)가 아니오!” 그러니 당연히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 기독교인>과 <기독교>에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기독교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1세기 지중해 동쪽 연안의 사회적 배경(Social Context) 등이 생소한 분이라면 얼마나 불편한 이야기일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21세기 한국인의 눈으로 읽고 해석했던 이제까지의 성경 읽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 길을 가려고 합니다. <소설 예수>는 1세기 이야기(성서)들을 그 당시의 눈으로 보고 그 당시의 배경에서 이해하고, 21세기에 던지는 의미로 받아들이자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예수의 탄식은 허구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귀에는 2000년 그 땅에 살았던 한 젊은이가 내 뱉는 깊은 고뇌입니다. -어쩌자고, 갈릴리 나사렛 언덕마을 젊은 예수의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어와 자리 잡았는지, 무엇을 하라는 얘기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메시아(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가 짊어지고 살았던 고뇌와 고통과 한스러움과 열정에 쉽게 공감할 수 없습니다. 그가 겪었던 고통과 수난은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고, 결국 그가 겪은 고난은 부활사건을 통하여 신원伸寃되었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그런 고난은 능히 견딜 수 있을 것이고, 몸이 죽더라도 다시 살아나 하늘에 오를 것이 보장되었기 때문에(원래 그런 목적으로 이 땅에 내려온 하느님이기 때문에) 견딜 만한 일이라고 받아들입니다. 
부활사건이라는 볼록렌즈를 통하여 예수의 삶을 바라보면 실제보다 커 보이고 위대해 보입니다. 그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면서 땅 위에서 두발로 걸어다니며 살았던 한 실존이 추상화되었습니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림을 받게 된 역사적 순서를 보면, 어떻게 예수의 삶이 증발했는지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에 대한 고백을 살펴 봅니다. 
1. 가장 먼저 기록된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 전서>(AD 50년경)에서는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사건, 즉 하느님이 예수를 높여주고 십자가 죽음의 수치를 씻어준 부활 사건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됩니다. 
2. 4개의 복음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된 첫 복음서는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받은 지 약 40년쯤 후에 기록된 것으로 성서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 <마가복음>(AD 70년경)에서는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올 때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 받는 사건을 기록 합니다. 
3. 첫 복음서 이후 약 10여년 안팎에 기록된 <마태복음>(AD 75-80년경), 그보다 조금 늦은 <누가복음>(AD 80년 경)은 <마가복음>를 텍스트로 사용했는데, 예수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었습니다. 
4. 네번째 복음서 <요한 복음>(AD 90년-AD 110년경)에서는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셨고,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고, 세상을 지으신 분이라” 고백하면서 예수를 훗날 성립되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한 분으로 올립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예수는 좀 더 일찍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 받습니다. 그 시기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게다가 신약성서는 첫 기록부터 <예수의 가르침 (Teaching of Jesus)>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가르침 (Teaching about Jesus)>을 목표로 했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으리라”(요한복음 3:16)는 선언은 감격스럽고 기쁜 소식이기는 하지만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초점을 바꾸었습니다. 
이 땅에서 숨쉬고 울고 웃고 먹고 마시고 사람들을 끌어 안았던 예수는 사라졌습니다. 왜 고난을 받을 것이 뻔히 보이는 예루살렘 길에 올랐는지, 왜 세상을 지배하는 제국과 권력 앞에서 “사람 살아가는 일”을 가르쳤는지, 왜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 로마는 예수를 가장 잔인한 십자가처형으로 제거했는지 그 모든 일들이 ‘하느님의 세상구원의 계획’ 속에 묻혔습니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결말이 Happy Ending으로 끝나는 Drama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예수의 삶을 더듬어보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죽음을 이긴 메시아(그리스도)”,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 세상 끝 날에 얻게 될 “부활”의 “첫 열매”로서 예수가 아니라 2000여년 전 로마제국이 지배하는 지중해 동쪽 땅, 갈릴리에서 태어나고 유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사람” 예수의 삶과 죽음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들을 모아 세운 교회에 보낸 바울의 서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고백한 공동체들(마가 공동체, 유대인 공동체, 요한 공동체 등)의 내부 문서였던 복음서들로 구성된 성서의 한계를 넘어보고 싶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은 예수의 가르침(말씀 전승)을 적절하게 배치한 각각의 Story Telling으로 보았습니다. Jesus Seminar의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 연구결과를 보면 (그리고 1세기 지중해 연안의 사회적 context에서 보았을 때), “성경에 기록된 (외경 포함) 1300여개의 예수 말씀(Saying) 중 30개 미만(28-29 말씀)만 예수가 직접 한 말로 보인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2000년 전 예수가 ‘이 말을 정말 했느냐? 안 했느냐?’보다 그가 처한 환경과 세상을 생각하면서 ‘예수는 어떻게 그 세상을 살았는가?’ 그 점이 저에게는 더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믿고 따르는 신약성서의 ‘예수 그리스도’로 등장하기 이전의 예수, 우리와 같은 ‘사람 예수’에 관심을 집중했고,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말씀’과 ‘행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예수의 뒤를 따라가며 기록으로 남겼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대와 지리적 배경, 사회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 속에 등장한 갈릴리 나사렛 마을 예수가 걸어간 그 눈물나는 길을 저 혼자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자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가르침 대로 살지 못했으니 기록하는 것으로 눈감아 주십시오’ 타협안을 제시했고, <소설 예수>는 저 혼자 그분의 뜻을 짐작하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따라 걷지 못한 부끄러움이 한 없이 큽니다. 삶과 생각 사이에 얼마나 큰 골짜기가 가로 놓여 있는지 절감합니다. 
나이 70이 넘은 사람이 <소설가>가 되고 싶어 시작한 일은 아닙니다. 이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0년 전의 그분 예수가 지금 우리에게 하는 말에 ‘귀막고 눈감을 수’ 없었습니다. 끝이 없는 일이겠지만, 책으로 낼 약속을 했으니 7권을 완간할 때까지 그분이 힘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제 십자가에서 내려와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그분의 모습을 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