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부터 여기에도 계셨던 하느님
<내게 찾아온 은총>(2012. 한국기독교연구소 간)에 수록된 저자의 글 중에서.
이 글을 쓴 것은 이미 10년전이었고, 다른 분들이 쓰신 글과 함께 책에 수록되어 출판된지 벌써 9년이 됐습니다. 이 때는 <소설 예수>를 쓰려고 구상하면서 자료를 모으고 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그동안 제 생각이 많은 부분에서 변화했습니다만, 몇 가지 기본적인 생각은 아직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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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있는 물은 모두 물입니다. 그 물을 만나는 사람에 따라 접시 물, 대접 물, 호숫물, 강 물, 바닷물, 비, 눈, 구름, 안개, 소나무의 진, 포도열매의 즙, 지난주에 물 준 난초의 꽃망울, 옥수수 씨눈 속에 숨겨진 신비가 되기도 합니다. 어디에 있든 어떤 형태로 있든 우리는 물을 물로 압니다. 하물며 물도 그러한데 하느님을 어느 그릇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 교회조직, 예배당 안에 하느님을 가둘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이 땅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하시고 그 고비마다 구비마다 손 내밀어 눈물 흘리는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치유해주셨던 하느님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 하느님이야말로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믿고 따르던 하느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고백하는 그 하느님이 이 땅에서도 처음부터 역사하고 계셨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제국주의 세력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들어 온 몇 명의 선교사가 하느님을 전할 때까지 이 땅의 김가 이가 박가 무수한 생명들을 무당 귀신 악귀 잡신 우상에게 넘겨 두시고 하느님은 저쪽에서 그들하고만 계셨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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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거친 땅 광야와 사막,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살던 유대인이 믿은 하느님은 거칠게 목적을 달성하시는 분이였습니다. 자기들이 만난 하느님을 자기들 방식으로 설명하려다보니 그리 됐겠지만 믿고 따라야 할 하느님의 말씀 ‘성경’에는 유대인의 그런 생활 방식이 녹아 들어 있습니다. 이 땅 기독교인들 의식 속에 그런 하느님의 모습이 자리잡게 되자 점차 삶이 거칠어지고 목표지향적 배타적 폭력적 일방강요적 가부장적 차별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 땅의 기독교는 시작부터 친미적 친서구적 사대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한말부터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대를 거쳐 해방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배출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지도층의 면면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지도층의 대부분은 우리에게는 이질적이기만 했던 기독교 문화를 이 땅에 이식하는데 전위적 역할을 기꺼이 수행했습니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어떤 이유에서든 이 땅 다른 종교들과 첨예하게 대립하지 않으며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민족 복음화의 위대한 걸음이 시작됐다고 기뻐하는 대신 걱정이 앞섭니다. 서양에서 겪은 신교와 구교 대립보다 더 심각한 완전히 다른 종교 간의 갈등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교인 숫자와 사회적 영향력을 다투는 일이 아니라 삶의 방식,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근본적 충돌입니다. 숫자는 스스로 말하지 않습니다. ‘해석’이 숫자의 의미를 말합니다. 기독교인의 숫자를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들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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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인의 역사인식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과 생선을 구워 놓고 아침 식사를 하던 때, 흙먼지 푸석거리는 나사렛 시골길을 걷던 그 시대면 우리나라는 삼국시대가 시작된 초기 100년 이내의 시대입니다. 그 이전, 모세가 유대인들을 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헤매던 시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 이사야와 아모스가 예언하던 시대들은 우리나라 역사로 치면 까마득한 상고시대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 땅의 기독교는 예수님의 행적은 일일이 기억하면서 그 무렵의 고구려 동명성왕과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 이야기는 신화로 치부합니다. 이 땅의 일은 까마득한 옛 일, 있을 법도 아니한 신화시대의 일 같고, 비슷한 시대의 예수님 말씀과 행적은 바로 어제일 같이 생각합니다. 신단수(神壇樹)는 신화이고 지팡이로 바위를 쳐 물이 나오게 했다는 모세의 이야기는 사실로 보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이 어제 우리 눈앞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의심의 여지없이 뚜렷하게 우리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중요할 것도 없는 옛 이스라엘의 연대와 왕조와 마을이름 사람 숫자들을 자랑스럽게 외우고 얘기합니다.
역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묻습니다. 그러나 경험은 내가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역사는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내가 겪은 일, 경험한 일에 대한 것입니다. 역사를 기억으로 체험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기독교의 역사를 내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이 땅에서의 기억, 삶의 흔적을 애써 지우려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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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이 땅의 사람들을 변화시키겠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이 땅에서 생명을 보살피셨던 하느님을 찾아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 한울님 상제님 천제님이 기독교가 고백하는 ‘하느님’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이 땅에 계셨던 하느님의 이름으로 다시 신앙을 고백하여야 할 것입니다. 현재 기독교인으로 고백하는 신앙과 교리와 삶의 방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역사하신 하느님을 우리 하느님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새로운 신앙운동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의 몸을 빌어야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실 수 있었던 분이 아닙니다. 세상이 그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는 이 개념에 익숙합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이렇게 믿고 살았습니다. ‘도(道)’도 알고 ‘스스로 있는 나(自然)’도 압니다.
하느님이 수고스럽게 선교사들 부축 받아 수천 킬로미터 먼 길 여기까지 오신 것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했다면 이 땅 기독교가 이처럼 오만하고 방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땅에도 이미 하느님 계셨다는 것을 안다면 선교한다고 우쭐대며 짐 싸 들고 이 나라 저 나라 오지奧地에 나가 ‘너의 사발 물’ 쏟아 버리고 ‘나의 대접 물’ 받으라고 얘기하는 일은 그만 둘 것입니다. 동쪽의 끝이며 동시에 서쪽의 끝이었던 여기에도 하느님이 처음부터 함께 계셨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이 땅의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땅이 땅끝입니다. 그것이 잘못 걸어온 길에서 돌이키는 일일 것입니다.
이 땅의 기독교인들이 안주하는 교회가 무너지면, 교회체제가 해체되면 신앙이 좀더 내면화될 것으로 봅니다. 마치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후 세계 각처로 유랑하게 된 유대인들이 그 마음에 성전 하나씩 갖게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교회가 무너지면 한국인의 한과 삶에 기독교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에서 교회로 대표되는 문제점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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